금융위기의 한파 속에서 움츠러드는 희망의 보고서 전 세계는 이 가을, 거칠고 빠르게 밀려오는 경제ㆍ금융 위기라고 하는 한파를 맞이하여 격전을 벌이고 있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시작된 이번 한파는 아시아에도 거대한 폭풍처럼 불고 있다. 한반도에도 체감하고 있는 이번 한파의 위력은 막강하다. 정부와 한국은행의 집계에 따르면 금융시장 안정과 불황 극복을 위해 투입했거나 공급하려는 금액이 모두 200조원에 가까울 것으로 집계되었다. 그러한 분투에도 불구하고 금융시장은 여전히 불안해서, 환율급등 주가하락은 지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한파를 만든 것은 부유층으로 대표되는 부국들이고 부유한 계층의 사람들이지만, 그 피해는 고스란히 빈곤층이 겪게 된다.
1,475원까지 급등한 환율(28일 서울 외환시장)은 한국 ODA에 직격탄을 가해서 이로 인한 피해는 개발도상국가들의 몫이 될 전망이다. 월드 비전의 필립 기통은 자체 인력 감축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고 발표했으며, 케어 인터내셔널의 로버트 글래서 사무총장은 이 단체의 많은 기부자들이 이번 금융 위기로 큰 타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빈곤층에게 음식과 약품 등을 지원하고 있는 구호단체들의 활동은 이미 축소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빈곤의 먹구름이 드리워진 시기에 유엔은 8년 전에 채택했던 새천년개발목표(Millennium Development Goals)의 중간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번 보고서는 선언채택 이후 새천년개발목표의 완료시점(2015년)까지 절반의 시간이 지난 시기여서 그 의의가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새천년개발목표의 채택과 중간점검
지난 2000년 9월 유엔의 밀레니엄 정상회의에서 세계 189개국 정상과 정부대표들은 새천년을 맞으며 인권, 빈곤 등 인류가 직면한 주요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공동노력을 기울이자는 내용을 담은 ‘새천년선언(Millennium Declaration)’을 채택했다. 2001년 제 56차 유엔총회는 동 선언의 구체적 이행을 위한 사무총장의 ‘구상도(Roadmap)'보고서를 채택하고, 국제사회가 이행해야 할 개발관련 8개 과제를 ‘새천년개발목표(MDGs)’로 명명하고 이 목표들을 이행하기 위해 통합적인 노력을 기울여 나갈 것을 결의 했다. 2008년 9월 11일 뉴욕과 한국에서 ‘새천년개발목표 보고서' 발간 기념회가 열렸으며, 같은 달 24일에는 유엔총회에서 새천년개발목표 이행 과정 고위급회의가 개최되었다.
유엔새천년개발목표 고위급 회의
24일 100명 가까운 정상들이 참여한 이번 고위급회의에서는 다시 한 번 전 세계 빈곤과 질병 추방을 위한 각 국의 행동을 강력히 촉구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는 “유엔이 새천년개발목표에 관한 논의를 하는 중에도 많은 사람들이 숨져가고 있다”면서 “우리에게 가장 큰 적은 전쟁이나 불평등, 특정 이데올로기, 금융위기 같은 것이 아니라 (빈곤 문제에 대한) 너무나 심각한 무관심”이라고 지적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의 마누엘 바로수 위원장은 EU의 원조비율을 2010년에는 국내총생산(GDP)의 0.56%로, 2015년에는 0.7% 수준으로 늘리는 약속을 실천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날 회의에서는 말라리아 퇴치를 위한 국제말라리아대응계획(GMAP)에 필요한 30억 달러의 기금 조성 계획도 발표됐는데, 이를 위해 세계은행은 11억 달러를 제공하고, 빌 게이츠 회장이 만든 ‘빌 엔 멜린다 재단’은 말라리아 백신 개발 연구에 1억6천만 달러를 제공하기로 발표했다.
<표 1. 지역별 MDG 달성 가능성 비교>
주: ○(2005년 중간목표 달성/2015년 최종목표 달성 가능)
△(2005년 중간목표 미달/2015년 최종목표 달성 가능)
×(2005년 중간목표 미달/2015년 최종목표 달성 불가)
자료: UN(2008), Global Monitoring Report 등 각종 자료에 근거해서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박영호 부연구위원이 작성.
보고서를 통해 바라보는 가시적인 성과들
유엔새천년개발목표는 8대 목표와 18개 세부목표, 48개에 이르는 지표를 알기 쉽게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지역적 편차가 심하기는 하지만, 유엔새천년개발목표는 이미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할 수 있다.
• 전체적으로 볼 때 절대빈곤인구를 반으로 줄이겠다는 목표는 이룰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아시아 지역에서 진행된 급속한 경제발전과, 독립국가연합(CIS) 및 동부유럽 국가들의 경제성장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 두 지역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초등학교 취학률은 최소 90%에 이른다.
• 초등교육을 받은 어린이들 중 남학생 100명당 여학생 비율은 가장 인구가 많은 지역을 포함하여 10개 지역 중 6개 지역에서 95% 또는 그 이상이다.
• AIDS로 인한 사망자 수는 2005년 220만에서 2007년 200만으로 감소했고, 새로 감염된 환자수도 2001년 300만에서 2007년 270만으로 줄었다.
• 1990년부터 지금까지 약 16억 명이 안전한 식수를 마실 수 있게 되었으며, 오존층을 파괴하는 물질은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게 되어 지구온난화를 완화시키는데 기여할 수 있었다.
• 민간기업들은 개발도상국에 필수의약품 제공을 늘리고 휴대전화 기술 등을 빠르게 확산시켰다.
드러나고 있는 한계들
위와 같은 괄목할만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는 대부분의 유엔새천년개발목표에서 이행성과가 부진하여 현재와 같은 속도로는 2015년까지 최종목표 달성이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 아프리카에서는 1990년 45%였던 절대빈곤 인구 비중을 2015년까지 22%로 줄이는 것을 세부목표로 설정했으나, 2004년 아프리카의 절대빈곤 인구 비중은 41%로 10년 전 1995년 45%에 비해 겨우 4%감소하였다.
• 개발도상국에서 일하는 여성 가운데 2/3 정도는 자가고용(own-account)이거나 노동에 대한 대가를 기대할 수 없는 가족단위 노동에 고용되어있는 등 매우 불안정한 고용구조를 보이고 있다.
• 개발도상국가에서는 매년 50만 명 이상의 여성이 출산 도중 또는 임신과 관련해서 사망하며, 개발도상국 인구의 절반에 해당하는 25억 명이 여전히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살고 있다.
• 탄소배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워놓은 국제 로드맵과는 상관없이 탄소 배출은 끊임없이 증가하고 있다.
• 선진국들의 대외 원조액은 2007년까지 2년 연속 감소했고, 2005년 약속했던 수준 아래로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
빈곤의 다양한 양상과 2015년을 향한 노력
개발목표의 성과를 종합해보면 빈곤의 다양한 양상과 다채로운 상호작용 그리고 실행되어야 하는 개발행동들의 폭넓은 상호강화 작용 등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빈곤층의 산모는 출산 시에 사망할 위험이 더 높다. 빈곤가구의 자녀들은 영양실조에 걸릴 확률이 높고 소아질병으로 인한 사망가능성도 높다. 이들 자녀들은 교육의 수혜를 덜 받게 되며, 아예 교육의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양성 불균형은 빈곤층 가운데 더욱 심각해 각종 개발의 혜택과 기회에서 제외된다. 이러한 양상은 다시금 '소득의 빈곤'(income poverty)을 고착화시킨다. 다른 어떤 계층보다도 빈곤층은 최근의 식량물가 상승이나 점차 증진하는 지구온난화 영향 뿐 아니라 분쟁, 자연재난 및 경제변동 등으로부터 치명적인 영향을 받는다.
이러한 ‘빈곤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 각국 정부는 빈곤퇴치가 거시경제 전략과 지방행정 정책에 이르기까지 모든 정부정책의 근간이 되도록 힘써야 한다. ‘제대로 된 일자리(decent work)’가 보다 많이 창출되기 위한 특별한 관심도 요청된다. 공공투자와 공공기관은 빈곤층을 위한 사업을 시행하되, 특히 교육과 보건서비스 제공 및 사회기반시설의 확충작업을 실시해야 한다.
유엔새천년개발목표를 위한 한국의 노력
이번 2008 유엔새천년개발목표 보고서가 갖는 한국적 의미는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2005년 이후 올해까지 모두 4차례 발간된 이 보고서는 유엔새천년개발목표에 대한 가장 기본적이며 포괄적인 자료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어로 소개된 적이 없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젊은 국제활동가들(Young Professional Network)은 ‘MDG리포트 한국청년위원회’(Korean Youth Commission for MDG Report)’를 구성하여 유엔 공보국(UN DPI)의 협조 아래 2008 유엔새천년개발목표 보고서 발간 기념식과 한국어판 발행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내었다. 아직 영어로만 나와 있는 이번 보고서는 다른 유엔의 공식 언어 (러시아어, 불어, 스페인어, 중국어, 아랍어)들 보다 먼저 나오게 되었으며, 본 보고서가 유엔 공식 언어 이외의 언어로 나온 최초의 사례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2008 MDG Report 한국어판 표지>
< ‘2008년 유엔새천년개발목표 보고서’ 발간기념 한국행사>
한승수 국무총리는 9월 25일 뉴욕에서 열린 제63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한국은 ODA를 2015년까지 33억 달러로 늘리고 기후변화 대응자금 2억 달러, 식량위기 지원 자금 1억 달러 등 국제사회를 위한 기여도를 획기적으로 늘린다는 발표를 한 바 있다. 매우 고무적인 발표이기는 하나, 한국의 ODA는 유엔새천년개발목표와는 다소 거리가 느껴진다는 평가도 있다. 지난 달 개발원조위원회(DAC) 실사단으로부터 받은 ‘특별검토보고서’에 의하면 최빈 국에 대한 지원 중 60%가 양허성 차관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대부분을 무상원조로 제공하는 DAC회원국들과 대조된다. 또 자원외교에 ODA가 사용될 수 있다는 우려나 ODA에 있어서 시민사회의 참여가 미비하다는 점 등도 유엔새천년개발목표를 달성하는 방향과 거리가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2015년까지 이제 6년 밖에 남지 않았다. 우리 세대가 개발목표를 이루는 인류 최초의 세대가 될 수 있을까? 언젠가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품위 있는 삶을 인류 전체가 공유할 수 있을까? 지금이 바로 기회이다! 금융위기, 세계 식량 위기, 지구 온난화의 영향 등 악재가 중첩되고 있으나 그럴수록 한국과 우리 사회가 유엔새천년개발목표를 위해 기여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가 창출되는 것이다. 함께 새로운 블루 오션(Blue Ocean)에 빠져보자! 다함께 행복해 질 수 있는 유영(遊泳)이 될 것이다.
작성: 하재웅 jj755@hanmail.net / ODA Watch NP, (사)한국해외봉사단원연합회 국제협력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