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를 중심으로 봉사단 관련 논문을 준비하시는 분과 함께 2010년 1월 6일 인터뷰로 진행했던 내용입니다.
< MDG리포트 한국위원회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모습 >
Interview 20100106
수: 가장 큰 질문은 어떻게 이런 봉사단 활동을 처음에. 시작하게 됬는지...
재: 제가 주로 강의 많이 하면 이제 그런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발표하는 다양한 버전이 있는데, 어느 정도 길이로 대답을 듣기 원하시는지 말씀해주시죠?
수: 상관없어요.
재: 제가 왜냐하면 3시간 버전도 있구요. 2시간 버전도 있고, 1시간 버전도 있구요. 15분 버전도 있구요. 다양하거든요. 살짝 고민되는..
수: 시간 되시는 대로.
일단 세계를 경험하자! 세계인으로 살아가기
재: 저는 원래 대학 생활도 경험하기 위해서 간다고 생각을 갖고 있었고, 젊을 때는 또 다양하게 경험해 보는 것 자체에 대한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서 젊을 때는 많이 경험해보고, 그래서 어떤 인식의 틀을 넓히는 것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래서 저에게는 한국에 살아도 세계인으로 살고 싶다. 세계를 경험하고 싶다 그런 욕구가 내면적으로 있어서 경험해보자는 생각이 일단 있었고, 경험해보기 위해서는 나가서 배워보자라는 생각이 있었고, 처음에 사실은 미국에 가려고 했죠. 한국사람의 전통적인 패러다임.....에 보면 외국하면 미국이잖아요. 거의. 미국가야돼 미국가야돼. 서류준비하고, 이렇게 막 아는 사람 통해서 이렇게 해가지고 비자를 발급받으려고 쭉 서서 줄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근데, 내가 추구하는 게 내가 배울려고 가는 건데, 꼭 미국가야 배우는 건 아니지 않느냐. 어딜가도 배우는 게 필요하고,
미국에서 결국 몽골 국제기아대책구기로...
그리고 또 처음에는 종교. 종교적인 배경이 작용하기도 했어요. 내가 또 신을 믿는 사람인데, 막연하게 내 맘대로 움직이는 것에 대해서 이건 쫌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한번 내려놓고, 다시 내가 어딜 가야되고, 이런 걸 다시 전반적으로 다시 세팅을 다시 시작하기 시작했어요. 내가 왜 가는지, 뭘 추구하는지, 뭘 배우고 싶은지 그래서 결국 원래는 유럽여행 쪽으로 다시 또 선회해 가지고, 그래서 일본이랑 영국이랑 워크캠프를 하고, 거기 오퍼를 받고 그래서 하고 그 다음에 유럽을 둘러보고 그 다음에 귀국하는 걸로 일정을 잡아놓고 티켓팅도 해놓고 그런 상황이었거든요.
그런 상황이었다가 어느 순간, 중앙일보에 실린 광고를 통해서 코피온에 지원했는데, 생각지도 않게 합격해서.. 활동 시작했습니다. 끌렸던 것은 종교적 활동도 있었고, 무료급식 등의 현지 활동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국제기아대책기구에서 첫 활동을...
수: 어, 코피온은...
재: 코피온 자체가 뭐냐하면 NGO들 네트워킹하는 거예요.
수: 아, 네트워킹 하는 거예요?
개도국 NGO들의 허브역할을 했던 코피온
재: 네, 네트워킹 하는 거예요. 근데 그게 사실은, 요즘 제가 볼 때는 조끔 바뀌어서, 네트워킹을 좀 넘어서고 있는데요, 기관 자체에서 지부 만들고 사무실을 꾸려가고 있는데, 원래 취지는 네트워크랍니다. 지금도 그런 성격은 강하게 남아있답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뽑아가지고 NGO에 각각 보내주는 거예요. 로컬 NGO들 중심으로 하되 한국NGO도 처음에는 있었거든요 저는 그 때 몽골지부에서 활동을 시작했던 거구요.
모든 인간은 신에 의해서 창조되었는데, 왜? 어떤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굶주림에 죽어 가야만하는가?
그때 사실 처음에는 종교적 배경 때문에 했던 것도 있구요. 어떤 부분이 있었냐면, 일반적으로 보면 내가 전도같은 거 하거나 사람들한테 얘기할 때. 내가 신을 믿고, 신은 그러니까 창조....세상을 창조했는데. 그러면 내가 믿는 신은 모든 사람을 향한 계획이 있고, 모든 사람을 사랑한다고 내가 배웠고, 알고 있는데, 근데 어느 순간, 텔레비전을 보면서 태어나자마자 굶주림에 죽어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 아이를 창조한 것도 신인데, 왜 죄도 없는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고통속에서 죽어가야만 되는가? 에 대한 궁금증이 사실은 저는 있었어요. 그래서 이제 그런 것들을 한번 경험해보면서 알고 싶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래서 처음에 몽골에서 시작했던 거예요.
그렇게 해서, 처음에는 노인들 대상으로 무료급식도 하고, 또 국문학 전공이었기 때문에 한국어 강의를 주로 많이 했구요. 많을 때는 7군데까지 강의를 해봤어요. 소속기관, 현지NGO, 개별지역 교회, 학교, 대학, 이렇게 해서... 그런식으로 다양한 활동을 했었는데 그렇게 하면서 내면적으로도 많은 변화가 있어요. 소위 말해서 선교 사명과 비전, 이런 것들에 영향을 많이 받을 수 밖에 없었구요. 왜냐면 활동하시는 분들이 모두 선교사님들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나도 동기 자체가 저 같은 경우는 종교적 동기가 강해서 갔기 때문에, 그런 것들에 대해 만족이 있었구요. 그래서.........결국은 삶의 동기를 무엇으로 봤냐면, 나로 인해서 딴 사람들이 기쁨을 얻는 것이었습니다. 그런게 정말 행복하다는 것아닌가? 발견을 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큰 혜택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에서 활동을 했습니다. 하다보니까는 무료급식도 해보고 단순히 무료급식은 한계가 있으니까 교육도 시켜봤는데, 그래서 교육해서 사람들 역량계발 하면 될 것 같은데, 이것도 한계가 좀 있는 것 같고, 그래가지고 그...농업개발 프로젝트 같은 것도 진행해서 이 사람들 먹거리도 개선시켜주고, 지도자양성 하튼 뭐 그렇게 해봤는데, 그것도 뭔가 채워지지 않는 그런..... 아쉬움이 있어서, 그래서 이제 그렇게 현장에서 몸부림 치면서, 그들을 좀 사랑할 수 있었고, 또 그들과 마음을 교류할 수 있었고, 그러면서 그들을 위해서 뭔가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고, 그런 변화와 그런 계기가 컸던 것 같애요. 그래서 그런 거에 대한 내 안에서의 OO이 컸던 거 같애요. 그래서 그 때 여파로 인해서 갔다와서도 누군가를 위해서 뭔가 내가 할 수 있는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자체에 대한 가치에 대한 동의부여가 있었고, 종교적으로도 그런 거에 대한 선교사로서의 어떤 사명의식? 단순히 복음전하는 것 뿐만 아니라 복음전하는 것 복음이라는 것 자체가 그렇잖아요. 종교 자체가 사실 종교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의 문제를 다루기 때문에, 그리고 그 사람들의 생...먹고 사는 문제를 같이 연결되어 있다고 보여지기 때문에 그런 문제, 개발의 문제와 같이 연결시켜서 고민할 수 밖에 없었고, 그렇게 해서 쭉 활동하다보니까 지금까지 오게 됬죠. 동기는 어떻게 됬든 종교적 베이스되, 그들의 어떤 삶에 대한 문제나 이런 것도 같이 고민하다 보니까 개발문제와 그들의 어떤 삶의 위로에 대한 부분. 뭐 이런 부분들과 관련해서, 쭉 온거죠. 대략 이해가 되십니까? (6:43)
수: 네. 근데 그게 몇 살. 그러니까.
재: 처음활동 했던 게 저는 군대 가기 전에는 해외활동하고 싶었는데, 걸렸어요. 군대. 제 때만해도 그게 어려웠기 때문에. 서류가 무조건 총장님 싸인받아와. 뭐 이런 식으로 나오니까 총장님이 아무도 안 만나 주는데...군대 갔다와서 첫 번째 목표가 해외나가자. 군대갔다와서 25살에 처음 활동을 시작했구요.
수: 실례지만, 나이가...
재: 올해로 35됬습니다. 적지 않죠?
수: 아...동안이시네요. 전 많아도 서른 하나, 둘 정도 생각했었어요. 10년..정도 됬네요.
재: 올해로 10년 째네요. 10년이면 강산도 한번 변한다는데.
수: 그러면 그 국문과를 나오셨을....국문과를 졸업하셨을 것 아니예요. 그러고 나서 돌아와서 이제, 국문과나 이제 전공에 대한 생각이나 이런 것들이 바뀌신 게 있나요?
재: 어,,많이 바뀌었죠. 솔직히 국문과에 갔었던 이유는 언론 쪽에 관심이 있어서 갔던 거구요. 그런데 갔다오고 나니까 언론 자체에 대한 비전이 약해지고 거의 없어졌어요. 언론보다 더 값지고 중요한 일. 국제활동이라던지 그러면서 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거예요. 비전도 그쪽으로 갖게 되고, 그쪽으로 찾게 되고, 그러면서 갔다와서 계속 경험했어요. 학교 다니면서 그 때 복학해서 3학년이었는데, 매년 나갔어요 방학때마다 나갔어요. 사실은. 그리고 국내에서도 국제행사들도 많이 참여하고 저는 그 다음부터 길이 쭉쭉 열렸던 케이스였어요. 돈이 없는 데도 불구하고 나갈 수 있었고, 뭐 학교에서 지원받거나 뭐 어학연수를 가거나 아니면, 해외봉사단을 가거나 아니면 뭐, 컨퍼런스 참석하거나 국내에 있는 국제 페스티벌 참석하거나. 아니면 무슨 뭐 세계 선수권대회에서 뭐 통역을 해주거나 뭐 이런 쪽에서 국내에서도 계속 그런 활동을 시작했었고, 방학 때 마다 해외 나갈 수 있을 때는 계속 나가기 시작했고, 그러기 시작했던 거죠. 그래서 결국은 학교 자체도 비전 자체를 그 쪽으로 틀어버리니까 국제활동이나 국제적인 풀이 중요하다. 큰 꿈을 갖고 싶다. 뭔가 이쪽으로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이게 더 중요하겠다. 국내적 요인도 되게 중요하겠지만, 근본적으로 지금도 굶어죽는 사람들의 oo문제라던지 그 다음에 진짜 세상적으로 어려움 때문에 눈물짓고 있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됬으면 좋겠다. 나의 존재가. 그런 꿈을 키웠죠.
수: 그러면, 그 아까 처음에 말씀하실 때 그러셨잖아요. 그 원래부터 세계. 근까 한국에 있지만 세계인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했다고 하셨잖아요. 그......런 생각은 어떻게 언제부터 하게 되셨던 것 같애요?
재: 그 때는 대학 초반부터 저는 제 삶에 대한 고민을 갖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내가 추구하는 것은 행복인데, 어떻게 하면 내가 행복해질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한 거예요. 그러면서 나의 20대는 어떻게 해야되지 나의 대학생활은 어떻게 해야되지. 이런 고민을 하는 거예요.
그 때는 잘 모르니까 내가 우선은 좋아하는 일을 해보자. 그리고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해보자. 약간 고민 됬었어요. 제일 좋아하는 그런 연극을 처음에 활동을 시작했었고, 그러고 나서 끝나고 나서는 그건 아닌 것 같앴어요. 그 나는 기쁜데, 세상에서 제일 슬픈 사람의 모습을 표현한다는 거 자체가. 무대에서만 서는 건 좋은데, 근데 연습하는 과정에 너무너무 힘들었어요. 내 감정을 죽이고, 내가 예를 들면 지금 되게 우울해. 근데 막 그 배우가 되는 순간 제일 행복한 모습을 표현해야되는 게 저한텐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그래서 평생 먹고 살기에는 이건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접고, 그 다음에 글쓰고 그런 거 좋아했기 때문에, 아 이쪽으로 하면 어떨까 싶어서 그래서 언론 쪽을 관심있게. 사회적 영향도 크고, 역할도 크고, 그래서 했는데, 해외갔다와서 바뀐거죠. 어떻게 보면 지금 가지는 비전이라는 게 세 번째 가졌던 비전인데요. 그런 과정 속에서 내가 어떻게 해야될까 하는 거 모르는데, 잘 모르잖아요. 그래서 우선은 지경을 넓혀보자, 범위를 넓혀보자. 다양하게 만나고, 다양하게 경험해보고, 그냥 알고 싶었어요. 내 안에 도전정신이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사람들 만나기 원했고, 다양한 공부도 하고 싶었고, 공부두요. 원래 그래서 원래 입학을 생명공학으로 했거든요. 전공을 바꿔가지고 국어국문학으로 나는 이쪽으로 올인해야하니까 바꾼거구요. 졸업할 때는 결국 복수전공해서 둘 다 졸업했어요. 그렇게 했었고, 그 다음에 그 외에도 사설 학원, 근까 사설 교육이나 세미나 이런 것도 관심있는 건 정말 많이 들었어요. 정치 종교 그 다음에 교육학, 뭐 이런 상담학. 뭐 이런 것들 내가 공부하고 싶은 것들은 정말 다양하게. 서울 그런 코스가 많으니까 가능한한 좇아다니면서 많이 공부했었고, 동아리 활동도 다양하게 했었고, 그러면서, 그러면서 그 때는 그냥 잘 모르니까 우선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는 사람이었고, 아르바이트 정말 다양하게 했고, 돈 벌기 위해서 한 게 아니고, 경험하고 싶으니까. 공부도 그랬고, 그러면서. 제가 모르니까 그럼 해보자. 할 수 있는 데까지. 그런 상황 속에서 어떤 그런 세계관 변화 관심. 그리고 갔다온 사람들 괜찮다고 하는데, 나가보라고 하는데. 그러면 사실 마음은 다 있잖아요. 상황이 안되서, 근데 나는 그런 의지를 갖고 준비 한거죠. 그러니까 길이 열리기 시작하더라구요. 그러다보니까는 그리고 젊을 때 이만한 경험치가 없더라구요. 요즘은 소위 말하는 스펙이라고 하는 이유로, 많이 또 논쟁이 있긴 하지만 그 땐 그런 게 없었거든요. 근데 내가 방학 때 뭘 하면 잘 보낼 수 있을까. 영어 공부, 뭐 잡히지도 않아. 근데, 해외에 나가서 경험해 보면, 그 때 가졌던 꿈, 비전. 그리고 그런 상황들을 준비하는 어떤 준비하는 과정들. 사람들과의 관계, 현지인들과의 어떤 교류. 뭐 이런 게 난 너무 재미있었고, 즐거웠고, 그게 하나의 기쁨이었고. 그런 문화에 대해 접하는 것도 너무 재미있었고, 그런의미에서 자꾸 경험해보자. 모르니까 또 알고 싶으니까. 재미있으니까 그런 동기로 쭉 온 거 같애요.
수: 혹시 해외에서 그런 경험을 하면서. 여러군데를 가셨잖아요. 기억에 남는 거야 당연히 많겠지만 어떤....특정한 사례같은 게 있어요? 아 내가 정말 그냥 전반적으로 느낌이 변하긴 하지만 그거 말고 어떤 계기나 이런 것들이 혹시 있어요?
재: 우선은 가장 경험을 하면서 특히 해외봉사활동을 하면서 느꼈던 것 중에 하나는 일단은 해외봉사활동은 어쨌든 텀이 있잖아요. 맥시멈 2년이든 3년이든. 그러면 어쨌든 돌아가야되는 상황이 생기는 거예요. 그게 계속 반복되다보니까 너무 힘들었던 게 뭐냐면, 현지인들이랑 매일 6개월동안 활동하면 친해지잖아요. 근데 난 떠나야되잖아. 그러니까 결국 활동을 열심히 하다보면 결국은 또 고민되는게 나는 어자피 갈 사람인데, 그러니까 단순히 어떤 책임회피하고 싶은 게 아니라 뭔가 더 하고 싶은데, 더 할 수 없는 한계점들이 기간땜에 생기더라구요. 그러고 나서 막상 공항에 가서 마중나가 열심히 수고했다고. 공항은 울음바다 되는 거지. 주저앉고, 막 울고, 너무 아쉽고. 근데, 그게 한번 두 번 할 때는 그냥 너무 미안하고 그랬는데, 세 번 네 번 다섯 번 여섯 번되니까 이게 뭔가. 아 이게 정말 정만 주고 떠나는 게 되게 무책임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좀 더 이 사람들을 내가 뭔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가지만 더 많은 것을 받고 오는데, 배우고 오는게. 그런 이들에게 뭔가 받은 사랑을 또 이들을 위해서 정말 내가 좋아서 마음에 두고 있는 이 사람들을 위해서 뭔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을 수 밖에 없었고, 그런 의미에서 장기 자원봉사 활동. 그런 걸 고민하게 된 거죠. 그러한 의미에서 그래서 공항에서 만남들이나 관계성들이. 그래서 기억에 남는 사람들이 많죠. 우선은 그래서 말이 생각보다 쉽지 않으니까 그 사람이 한국말을 하든 내가 현지어를 하든. 하지만 오히려 말이 안되기 때문에. 마음 배려라던지 마음 씀씀이가 더 민감해지는 거 같애요. 그리고 그렇게 기억에 남는 사람들이 있어요. 작지만 쪼끄만 마음씀씀이나 이런 것 때문에 정말 나한테 많이 영향을 주는. 사람이....... 가장 영향을 많이 주는 거 같애요. 헤어지는 과정 속에서의 아쉬움들. 그런 부분이 있는 것 같구요. 그 다음에 또 현지에서, 사례들은 많아요. 현지 활동이나. 이런 것들도, 중요하게 봤던 것 중에 하나가. 어떤 필드에 가면 공동체 활동이나. 이런 활동을 통해서, 그런 제가 공동체 이름은 까먹었는데 거기는 인제, 10명이 오면 10명이 오면 8명은 사역하고 10명은 돈을 벌어요. 돈은 돈 버는 사람이 철저히 돈을 벌고, 돈을 버는 것을 가지고 그 사람들의 어떤 선교활동이든 구제활동이든 사역에 이렇게 쓰는 거예요. 비즈니스 활동은 비즈니스대로 활동을 하는데, 되게 비즈니스철학이 되게 강했고, 그 다음에 사역에 대한 부분도 강했고, 그리고 거기서 인제 교육을 집단교육을 시키니까 홈스쿨링이라던지 그 안에서 교사가 나와서 하고, 또 육아도 같이 하고, 교육문제가 자연스럽게 그 안에서, 또 이게 국제 네트워크기 때문에. 외국사람들도 다양하고, 인종도 다양하게 있어요. 그래서 힘든 부분도 있지만 그런 다양한 문화권에서 누릴 수 있는 그리고 거기는 단순하게 가는 게 아니라 한 번 가면 본부에서 몇 년간 지원해주고, 그리고 거기는 뿌리 박고 평생 살 사람들. 가서 지원하는.
수: 그럼 거기도 갔다가 오신거예요?
재: 아니요. 거기는 이제 인터뷰 하고 만나서. 그러니까 굉장히 교육 모델이 될 수 있겠구나. 그런 단체들이 많이 있어요. 어떤 데는 예를 들면 키르기스탄 갔을 때는 거기는 진짜 유목민이기 때문에 몽골에서 많이 봤지만 유목민이기 때문에 버려지는 농토가 많거든요. 하지만 한국은 요즘 해외식량기지 같은 걸 저도 관심있어하는데, 관심만. 근데 거기서는 이제 유목민들이기 때문에 저도 농업 개발 프로젝트 해봐서 알지만, 씨앗도 부족하지만 어떻게 짓는지 모르거든요. 근데 거기는 뿌려만 놔도 수확이 되는.
수: 농토가 되게 비옥한가봐요.
재: 되게 비옥하.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어쨌든 가축을 하잖아요. 유목민들 때문에. 배설을 하죠. 똥을 만들죠. 초지를 먹죠. 그렇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어떻게 보면 농..그러니까 이게 사실 적당하게 유목민하고, 농민 잘 조화가 되면 되는데, 이 조화가 진짜 어려운 거거든요.
수: 그렇죠. 한쪽에 완전히 치우치는 경우가 많으니까.
재: 네. 그래서 적당히 그것만 해주면, 근데, 그런 데는 진짜 묵은 땅이 그냥 일년에 몇 핵타르, 몇십 핵타르, 몇 백 핵타르까지 가니까. 정말 엄청나거든요. 아예. 그 농대들 많이 있잖아요. 감당이 안되는데, 거기서 집단 거주를 해 가지고, 어, 그런 프로젝트 괜찮겠다. 그러면서 실제로 그들은 버려지는 땅이기 때문에, 우리가 수확을 하고, 한국은 어자피 농토가 부족하기 때문에, 그 자연스럽게 국가간 체결을 해가지고, 만들어져가지고, 융통할 수 있게끔 해주고, 나머지 재료라든지, OO라던지 양육하는 문제도 같이 해주고 빈곤문제 해결되지, 한국의 식량 문제 해결 되지. 교육문제 해결되지 이런 부분에 있어서 굉장히 의미가 있고 필요하겠단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애요. 단체들이. 그거 외에도...
수: 그러면 다른 사실 직접 참여도 해보셨고, 이것저것 많이 교육활동이나 농업활동이나
재: 예 파견도 해보고 교육도 해보고 프로그램도 짜보고
수: 근데, 그 중에서 가장 관심있으신게 해외봉사단 쪽이신 거예요? 아니면 여러 가지 관심중에 하나이신 거예요?
재: 어, 지금 저는 지금 제 관심은 전반적으로 대외전략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어요. 근데 이제 제 관심의 고민은 고민하다보니까 활동하다보니까 어.....필드는 외국에서 활동하는 거 자체는 무리가 가더라구요. 어떤 면에서 무리가 가냐면 첫 번째가, 우선은 나는 어떤 데 들어가면 거기에서 좀 더 주도적 역할을 감당하고 싶은 욕심이 있고, 훨씬 더 변화를 만들고싶고, 또 내가 생각하는 어떤 이데아적인 사회적 모습?. 그게 어떤 신앙적으로 보면 소위말하는 하나님 나라 완성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세상적으로 보면 내가 만들고 싶은 나름대로의 이데아적 사회적 구성모습이 있는 거잖아요. 근데 그런 것들이 외국에서는 이루기 어렵더라구요. 외국에서는 어쨌든 나는 이방인이고, 근까 외국에서는 개도국도 마찬가지고 마찬가지더라구요. 외국인이 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이 있더라구요. 소수이잖아요. 그 언어에 대한 문제가 걸릴 수 밖에 없고. 인맥도 제약이 될 수 밖에 없고, 그 한계점들에 대한 벽을 저는 많이 느꼈어요. 언어 문화 인맥, 그 한계점들을 느끼면서,,,,결국 근데 한국은 저한테는 그만큼 편한 곳이었고, 또 그 만큼 제가 갖고 있는 인프라가 생각보다 좋았고, 한국에서는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고, 또 잘 알고, 또 내가 할 수 있는 역할들이 많을 꺼라는 생각이 들고, 결국 그래서 내가 필드를 정해야되는데 해외냐 한국이냐. 선진국이냐 개도국이냐 이런 필드를 정할 때, 한국이다. 그 대신 한국에 대해서 관점은 해외에 있는 거죠. 그래서 그러다보니까 제도에 관심을 갖다 보니까 제도에 대한 변화. 이런 것들에 관심을 많이 갖게 되고, 제도가 중요하다. 내가 정말 현장에서 뛰어가지고 OO명 밥 먹일 꺼, 제도만 잘 바꾸면 100만명도 먹일 수 있구나. 그리고 제도가 너무 안타깝죠. 현장에서 필드에서 경험해보니까 코이카 운영실태도 그렇고, NGO도 아쉬운 점이 많고. 여러 가지 한계점들이 있는데, 이게 왜 이렇게 될 수 밖에 없는가 현장에서 보다 보니까 답답한 거죠. 그래서 이론적 틀이나 이런 것들에 대한 고민. 관심 갖고 있는거죠. 그 안에서 내 역할이 어떤 건지를 관심 갖고 있는 건데요. 한국에서 그래서 대외전략.에 관심이 많이 있는 거예요. 결국은 한국이기 때문에 또 간과할 수 없는게 결국은 북한 문제와 더불어서 그..동아시아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거구요. 그래서 그 다음 제 관심은 그래서 필드는 한국에서의 역할인데. 한국의 역할이고 한국의 어떤 대외전략에 관심이 있는거구요. 그렇게 관심 많은 중에서도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접근할 것인가. 전반적으로 그래서 한국은 예전에는 소위말하는 예전에는 편승외교를 하다가 이제는 소위말하는 이제, 중립국가. 미들파워국가........가 되야되는데, 그걸 하기 위해서는 소위말하는 이제 소위말해서 소프트파워같은 게 중요해 지고 소위말하는 이제 틈새외교같은 게 중요해지기 때문에 틈새외교 전략적 수단으로써 소위말하는 PKO나 ODA가 중요하다고 보는 거예요.
수: PKO가 그거죠, 평..
재: 평화군. 평화...평화유지군.
수: 아, 평화유지군.
재: 그래서 그런 활동들이 중요하다고 보는거예요. 그 다음에 소위말하는 소프트파워의 가치를. 문화외교가 중요하고. 그런 여러 가지 포지션 중에서 제가 잡은 건 결국 ODA 인 거죠. 그런 큰 대외 전략 중에서 ODA 파트에 좀 더 관심을 있게 보게 된거고 그 ODA도 다 할 수 없으니까. 그 중에서도 나는 해외봉사단 중요하다고 보는 거예요. 어떤 의미에서 중요하다고 보는 거냐면, 해외봉사단 솔직히 논란이 많죠. 그게 현지에서 도움되냐, 뭐 인정한다. 도움 안된다. 현지에서 그 돈 한국사람 보내려면, 현지 인력들 스텝 키우면 되는데, 왜 보내냐. 하지만 이제는 한국이 ODA 잘 하기 위해서는 전문가들 인력들 키워야 되는거 아니냐. 그리고 그에 대한 정보들이 필요한 거 아니냐. 그리고 인프라 구축되야 되는데, 인식도 많이 제고되야하는 거고, 그런 의미에서 한국 봉사단 사업이 갖고 있는 특정한 포지션이 있다. 봉사단 사업 자체가 갖고 있는. 그래서 그걸 통해서 인력 양성 해야되고. 거기에 대한 가치들을 한국사회에서 공유되야되고. 그런 의미에서 세계시민의식 형성되야 되고, 그런 사람들이 한국사회에서 역할이 필요하고, 세계 사회에서 역할이 필요하다. 이런 여러 가지 요소들 때문에 한국해외 봉사단이 중요하다고 보는 거구요, 그만큼 경험해봤더니 잘 아는 거고 익숙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하다보니까 근데 여기에 대한 중요성들이 내가 느끼는 부분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나름대로 잘 할 수 있는 거고, 또 좋아하고 그렇기 때문에 어쨌든 제 포지션에서는 해외봉사단 사업자체가 잘 됬고, 효율적으로 됬으면 하는, 지금 그래서 문제점들을 많다고 보는 관점에서, 문제점들을 썼잖아요. 그래서 그걸 이렇게 바꿨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대안에 대한 고민을 하는 거예요. 그렇게 그래서 관심 갖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모르겠어요. 얼마나 이제, 그리고 전반적으로는 어쨌든 사실 이쪽 판에서 ODA 마찬가지고, 전반적인 대외전략, 큰 판에서의 상황으로써 큰 맥락으로써의 어떤 ODA 접근하는 사람 별로 없거든요. 그 맥락으로써 해외봉사단 접근하는 사람 별로 없거든요. 거기에 대한 가치를 담고 싶었는데. 거기에 대한 어설픈 시도들이기도 해요. 이게. 그래서 하고 싶은. 욕심을 더 냈다 그러면, 한국 대외전략 이렇게 바뀌어야 된다. 한국의 대외전략 속에서 공공외교가 중요하다. 왜 중요하냐면.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그러니까 한국의 대외전략 중에서는 소프트파워가 중요하고, 소프트 파워중에서는 문화외교가 뭐가 이렇게 중요한데. 그 중에서 공공외교가 중요한데.
수: ODA에서는.
재: 그렇죠. 그 중에서는 ODA랑 연결이 많이 되 있고. 틈새 외교, 소프트 파워 이런 것들이 다 연결이 되 있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의 어떤 해외봉사단 사업을 주목하는 거죠. 그리고 거기에 대해서 해외봉사단은 하고 싶은 건데, 거기에 대해서 나름대로 제가 녹여내고 싶은 욕심이었던 거죠.
수: 그렇구나. 아. 처음 봤을 때도, 말이 진짜 빨라서 되게 깜놀했었는데. 그 때 코피온에서.그 날 하얀 양복 있고,
재: 항상 하고 싶은 얘기가 많은 사람이예요.
수: 현장에 가서 가장 많이 배운 건 뭐라고 생각하세요?
재: 현장에서요?.......... 문화죠. 아.....인간의 삶이 이렇게 다양할 수도 있구나. 그리고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 몽골같은데 가면 정말 하루 일과가 일어나서 양치고, 또 목초지 돌보고 땔감 구하고, 그러고 나서 저녁에 유야무야 마무리하고, 밥하고 이렇게 하면서. 그게 그냥 삶인 거예요. 한국에서는 전혀 상상할수 없는 삶이 현지에서는 존재하는 거죠. 그것만 있는게 아니라 각각의 문화 속에서 있는 거죠. 그니까 소위 말하는 25년동안 하나의 문화권에서만 있다가 정말 다른 언어 다른 민족 다른 환경속에서 사는 게 어떤 것인 지를 그리고 그게. 갖고 있는데, 결국 언어로 돌아가기도 하지만 언어 뿐만 아니라 문화적 있는거죠. 그런 것들을 보면서 삶이 얼마나 다양할 수 있는 지 배우죠. 그러다 한국에 다시 들어오면, 다시 또 나이가 이렇게 찼네. 어 맞어맞어. 이거 현실적인 고민들을 해야되는데, 어우씨 나 지금 뭐하고 있지? 이런... 하면서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수: 다양성을 배운다는 게 선배님한테는 어떤 의미였어요?
재: .......그만큼 관점이 넓어지는 거죠. 그 다음에 왜. 꿈이 뭐냐고 물어봤을 때, 사람은 왜 아는 만큼 볼 수 있잖아요. 아는 만큼 생각할 수 있고, 생각하는 만큼 실천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려면 우선 많이 알아야되요. 또 많이 봐야되요. 소위 말하는 비전이라고 했을 때, 왜냐면 개도국가면은 애들이 너 꿈이 뭐야? 물어보면은. 몽골에 가면은, 전러치요. 이러거든요. 전러치가 운전수예요. 근데 거기서 운전수. 운전수가 되는 게 꿈이예요. 근데 운전수가 되고 싶은 이유가. 뭐 있어. 돈 잘 벌거든요. 개도국에서는. 그러니까 운전사는 보고, 또 돈 잘 버는 것 같고, 떵떵 거리고 잘 사니까. 그게 꿈인게 당연한거죠. 우리나 하찮게 보죠. 걔네들한텐 그게 꿈일 수 있는 거죠. 그걸 다시 바꿔가지고, 야 그거보다 할 수 있는 게 많아. 아무리 설명해줘도 보여주지 않으면. 아, 이렇게 해서. 그렇기 때문에 내가 많이 볼 수 있었고, 경험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내가 가질 수 있는 꿈이 그만큼 커질 수 있었고. 좀 더 그런 고민에 대한 걸 할 수 있었던 거구요. 거기에 대한 좀 더 그렇게 선택의 옵션이 많아진거거잖아요. 거기 중에서 난 선택할 수 있게끔 된거고. 물론 상황에 따라서 다르긴 하죠. 그만큼 잘 준비되야지, 그 다음 그 다음, 그다음을 잘 선택할 수 있긴 한데.
수: 해외 봉사단을 가는 사람들도 어떤 면에서는 그런 선택지를 넓힐 수 있는 길이 될 수도 있는 거겠네요. 그러면.
재: 그쵸. 그만큼 뭐 저....도 비롯해서. 전 모임 많잖아요. 코피온도 모임도 있을 꺼고. 또 그 기수별 모임도 있을 거고. 또 제가 또 한 성깔하기 때문에 또 하라면 가만히 안 있고, 또 막 떠들어야돼. 이렇게 해야합니다 저렇게 해야합니다. 우리 모임 만들까요? 이렇게해서 했지 않겠습니까? 윗 기수 아랫기수 두루두루 모임이 참 많긴 한데. 이렇게 사람들 만나서 얘기하다가 보면, 확실하게 사람들은 그런 다양성이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는 것들을 알죠. 그리고 또 그런 것들에 대한 향수가 있죠. 그래서 대부분은 다 좋은 추억을 가지고 오죠. 동기나 출발점이 그런데, 한국 해외봉사단은 2년이기 때문에, 그리고 국가에서 파견하기 때문에 쫌 성격이 다른 거 같애요. 나머지는 쪼끔은 이제 훨씬 더 거기에 대한 가치와 활동에 대한 부분에 있어서 그......런 것들이 좋은 거 같구요. 그래서 중요한건 이제 관계성인거 같긴 한데. 아무튼 그래서 그 사람들의 경험들....이런 것들
어, 근데 정확히 질문이 뭐였죠? 하다보니깐.
수: 어, 저도 듣다보니까 까먹었는데. 아, 해외봉사단을 가는 다른 친구들도, 그런 비슷한 그런 선택지를 넓히는 이유. 경험을 진짜 아까 말씀하셨던 것처럼 지경을 넓히면 꿈이 달라질 수 있고. 볼 수 있는 게 많아진다. 그러면 변화들이 많이 일어나잖아요.
재: 그쵸. 하지만 상당부분은 현실과 이상에 대한 괴리감이 있는 것 같애요. 우리가 직업 선택할 때 원하는 대로 항상 안 되잖아요. 사실 또 대부분이 현실론을 많이 택하죠.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내가 직장생활 하든, 회계사가 되든 뭘 하든. 그런 경험들이 녹아져서 내가 있다는 거죠. 그래서 회계사 일을 할지라도, 회사에서 내가 OO실에 근무한다고 할찌라도 그러한 경험들이 내 안에서 중요한 자산으로 남는다고 보는거죠. 단순히 어떤 선택의 길을 넓힌다기 보다는. 자기 삶의 풍요성을 위해서 봉사활동을 선택하는 거. 왜 예술하는 사람들. 피아노를 칠 수 있는 사람이면, 그만큼 그거 자체가 어떤 연결된다기 보다는 클래식을 안다는 것 자체가. 그만큼 이해를. 내가 연극을 즐기던지 뮤지컬을 즐길 수 있는. 모르는 사람보다는 거기서 향유할 수 있는 문화가 넓다는 거니까. 마찬가지로 문학도 마찬가지고,. 그런 것처럼 자신의 어떤 삶의 지경을 넓히는 근까. 삶의 어떤 활동 폭? 그래서 같은 비슷한 경험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 그래서 반가운 거예요. 그래서 즐거운 거예요. 또 그런 것들.....이 내 안에 녹아져 있죠.
수: 제가 별로 질문을 정리해서 오지 않았기 때문에,
재: 전 정리가 되어 있기 때문에.
수: 하하. 역시. 네. 혹시 뭐 또 생각나서, 3시간 짜리 중에 요거 중요한데 빼먹었다. 그런 거 있으면 마지막으로
재: 저는 해외봉사활동을 강의하고 이렇게 할 때도. 핵심은 이제 해외봉사단만 보지 마라. 그냥 1주가는 것도 마찬가지고 6개월 가는 것도 마찬가지고, OO해도 마찬가지고. 자신의 어떤 근본적인 활동에 대한 가치와, 근본적인 어떤 내면 동기. 차원에서 해외봉사단을 경험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저는 질문을 많이 받거든요. 해외봉사활동 갈까요, 말까요. 코이카갈까요. NGO갈까요. OO에서 갈까요. 이런 질문들 많이 받거든요. 국내훈련할 때도 만약에 가게 되면,
수: 국내훈련이요?
재: 국내훈련 다 받잖아요. 2주 가더라도 다 받잖아요. 그러니까 가서 얘기하는데, 그럼 가서 나는 어떻게 활동을 해야되지? 단순하게 그냥 가서 잘 활동하는 것만 생각하지 말고. 장기적으로 자기 인생에 있어서 활동에 대한 의미를 부여를 하고, 내가 근본적으로 내가 왜 가는지. 내가 무엇 원하는지. 뭘 배울 수 있는지. 에 대한 그 고민들. 또 정말 중요한 건. 그래서 장래에 내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또 직장 다닐 수 있는데. 말 그대로 단순하게. 나는 그냥 단순하게 경영실에서 근무하는 게 꿈인데, 삼성 들어가는 게 꿈인데. 근데 그러면 거기에 대한 일을 할 수 있긴 하지만 그걸 다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근본적으로 자신의 인생에 대한. 그럼 그렇다 그러면 자기 삶에 대한 고민 안하냐. 그렇진 않거든요. 사람은 다 돈만 있다고 해서 잘 사는 건 아니잖아요. 가치에 대한 추구가 내면적으로 다 있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내가 추구하는 삶에 대한 가치나 지향점이 어디 있는지에 대한 고민은 필요하다. 그런 삶의 큰 틀에서 어떤 자신의 삶의. 내가 왜 살고, 뭘 추구하고 사는 지에 대한 고민속에서 해외봉사단 들어갔으면 좋겠다. 그래야지 더 효율적이고. 그래야지 자기가 더 더 많이 배울 수 있다, 그래야지 협력도 잘 될 수 있다, 그래야지 주변사람들과의 관계 더 좋아질 수 있다. 그래서 가능하면 잘. 가능해서 잘 맞는 다고 그러면, 자신의 역량개발 차원에서도 스펙, 뭐 얘기 많이하는데, 단순히 저는 스펙 무시하지 못해요. 얘긴하지 않지만. 스펙 정말 제대로된 스펙,,이었으면 좋겠다. 단순하게 그냥 한 줄 긋는 것이 아니라. 왜 내가 지원했, 어떤 목표땜에 지원했고, 그렇게 해서 뭘 배웠고, 내가 앞으로 뭘 하려고 하는데, 이게 필요하다. 그런 식의 스펙이면 얼마나 좋으냐. 또 그게 당신한테도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 그게 나한테도 도움이 된다. 이쪽 업계에 있는 사람으로써 수기관리(?) 필요하다. 뭐 이런 얘기를 하거든요. 그래서 요런 상황에서 이해되는 거 같...
수: 전반적인, 아주 대강. 이겠죠. 한 10년간의 그런 경험을 뭐 몇 분 동안 얘기를 하는 것도 너무 어렵고, 너무 경험이 많으면 솔직히 어, 여기서 이 얘길 하면 저 경험이 서운하고,
재: 그쵸,
수: 저 얘길 하면 또 저 경험이 서운한 경우들이 참 있을 것 같애요.
재: 그쵸. 그렇잖아요. 어떤 사람한테 2주 동안 예를 들면, 뭐 필리핀 갔다왔다, 필리핀 어때? 할 얘기 무지 많거든요. 대따 많아요. 근데 필리핀 사는 사람한테 물으면, 한국사람도 마찬가지예요. 외국사람들한테 한국어때? 얘기 못하거든요. 한국사람이 한국을 어떻게 이해하지. 어떻게 뭐라고 얘기해야하지? 이거거든요. 거기 예를 들면, 10년살았던 사람들, 중국사람들 중국에서 활동하는 분들한테 중국어때요? 10년 살수록 얘기 잘 못해요. 확 뭐 어떻게 뭘 얘기하지. 이 주, 일주일 갔다온 사람한테 물어보면, 할 얘기 진짜 많거든요. 중국은 이래이래 이건은 이래이래 이렇고 이렇고 저렇고, 몽골도 마찬가지예요. 겨울에 왔던 사람들은 다 울고 가거든요. 추워가지고, 이거 저 뭐 영하 15도? 거기는 30도까지 떨어지거든요. 나가면 이렇게 고드름 생기거든요 여기.
수: 진짜요?
재: 네 진짜 여기 고드름생겨요. 갔다오면 눈이 하얘지거든요. 왜 하얘지나 싶었는데, 눈만 내놓고 가니까 입김이 이렇게 올라와요. 입김이 이렇게 얼어요. 이게 좀 심해지면 고드름 이렇게 얼어요.
수: 아, 아, 진짜 웃기겠다. 아 그래서 추운 지방에 있는 사람들이 여기가 이렇게 하얗구나. 사진 같은데 보면.
재: 그게 근데 웃긴게 아니라 사람들 대부분 다 울어요. 단기팀 몽골에 있을 때 단기팀 왔던 사람들은 여자분들은 열에 아홉은 다 울었어요.
수: 너무..
재: 이게 춥,거든요. 추우니까 이게 어느 순간 지나면 고통스러워요. 그리고 아파요. 몸이 아파요. 그래서 아파서 울어요. 아파서 이렇게 우는구나. 근데 어떤 건지 저는 실질적으로 보게,, 되죠. 그니까 이게 사실은 사람들이 말하는 순수성인데,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는 것처럼, 확실히 그건 특이한 경험들이나 고생했던 경험이기 때문에 더 자신이 값지게 느끼는 것 같애요. 어..더...이렇게 자신의 어떤 내면적 성숙을 통해서 이루어진거 같구요. 저는 교육학을 얘기할 때, 저는 김영호 박,,, 박영호 박사님. 김영호 박사님 그....미국에서 교육 차관보하셨던 그 분의 교육학 이론이 있는데요. 그분이 교육학을 보통 세 가지로 얘기하거든요. 단순히 그냥 교육을 그냥 지성만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왜 더 세분화된 것도 있는데. 그러니까 지성, 그 다음에 인, 그 다음에 심성,, 그러니까 지력 심력 체력이 중요하다. 교육이라고 하면 3요소가 필요한데, 단순히 우리가 지력만으로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능력, 심력도 되게 중요하다. 그리고 체력도 되게 중요하다. 학교에서는 지력적인 부분인데, 지력도 사실 학교에서 할 수 있게 아니예요. 별써 인터넷 시대부터 시작해서 책도 있고, 그렇기 때문에 과연 학교가 추구해야하는게 무엇인가. 봉사단 같은 경우에 심력을 개발시키는데 너무 도움이 되죠. 현지사람들과 부딪치고, 고생도 해보고, 전혀 다른 문화권에서 어려움도 겪어보고, 외로움과의 싸움, 현지의 환경에 대한 싸움. 추위면 추위. 더위면 더위. 그 다음에 언어로 대한 어려움으로 인한 싸움, 문화의 격차에 대한 싸움. 뭐 그런 것들. 결국은 사람이라는 게 뭐가 제일 힘들겠어요. 사람들 물어보면, 다 이렇게 얘기한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 제일 어려워요. 다 얘기하는 거잖아요. 박찬욱감독도, 자기자신과의 싸움이요. 해외봉사단 뭐가 제일 힘들었어요? 자기자신과의 싸움이 제일 어려워요. 저도 그렇게 얘기하거든요. 자기자신과의 싸움이 제일 어려워요. 다들 그렇게 얘기하거든요. 근데 그런 것처럼 그런 자기자신과의 싸움에서 소위 말해서 심력을 기르는데 있어서는 그만큼 예방주사와 트레이닝의 과정으로써는 참 의미가 있고 도움이 된다. 내가 어떤 일을 하면서도 사실 그런 경험들이 또 지금 나를 만들어 가는 거고. 도움이 된다고 보는 거죠.
재: 저는 그래서 항상 강의하다보면, 그 많이 고민하는게, 이론을 먼저 공부할까요, 현장으로 갈까요. 그런 질문 많이 하잖아요. 저도 고민 많이 했었고, 사람들은 대부분 다 이론을 먼저 선택해요. 왜냐하면 안정빵이거든요. 학력만큼 그만큼 스펙 좋은 게 어딨어요. 그만큼 안정적으로.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심성 자체가 안정성을 추구하는 본능이 있는 것 같애요. 근데 저는......현장 먼저 했었고, 현장 먼저 해야된다고 생각을 해요. 필요하면 공부하고. 그런게 확실히 느꼈던 게, 별로 상관없는 국어국문학 공부하면서도, 이거 왜 공부하지 싶었는데, 현장에서 외국 사람들한테 국어를 가르치다 보니까 음운론, 뭐 경구개음, O구개음, 가니까 그게 필요하거든요. 우리는 외국사람들 ‘의’ 발음 잘 못하거든요 의 해보세요. 의! 자 보세요. 의! 혀 모양으로 할 수 없거든요. 이 해보세요. 아 이 되네요. 그럼 혀를 뒤로 땡기세요. 혀를 더 낮추세요. 이게 음운론 이론에 있거든요. 이게 한국에서 공부할 때는 아 이걸 왜 공부해 아 짜증나 아 이거, 재미없어 그랬는데 현장에서 가서 가르치다보니까, 외국사람들한테 설명을 해야되는 거예요. 합리적으로 이해를 해야되거든요. 모국어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모국어가 최. 좋게든요. 아 이게 필요하구나. 영어만 공부할 때는 의미론이 어떤 건지 잘 몰랐어요. 언어 의미론이 다 다른 거구나. 우리가 괜찮아. 이거하고 That's ok, Never Mind, 이거 다 괜찮아. welcome 이렇게 하지만 이게 영어로 보면 달라. 정말 차이가 나요. 근데 “괜찮아” 하고 몽골어에 있는 “주드르” 라는 의미하고 정말 똑같애요. 그 의미적으로 보면 정말 똑같애요. 그 의미적으로 딱보면, 매치가 딱 되요. 쪼끔 다른 게 있지만 거의 비슷해요. 의미의 구성자체가 이렇게 다양할 수가 있구나. 또 언어가 표현할 수 있는 한계 자체가 이런 거구나. 똑같은 영어라 해도, 의미를 똑같이 전달해도 그 문화적 배경에 따라서 받아들이는 게 달라요,
수: 그렇죠. 맞아요.
재: 상황적 논리가, 단순히 상황적 논리들 뿐만 아니라 문화적 차이 때문에 생기는 느낌들이 있거든요. 그래서 의미론을 배울 때 느낌이 달라져요. 그러니까 질문해도 달라지고, 왜 학문을 공부할 때 그래서 복귀한 다음에 복학한 다음에 국문학 공부할 때도 저는 공부 OOO 안하죠. 재미가 있고, 어떻게 관점이 생겼고 그러니까 내 관점으로 질문하니까 교수님들도 놀라죠. 어 너 그거 어떻게 알아. 어 이거 강의하다 보니까 이렇던데요. 내 관점이 생기고, 그러니까 쌓이는 게 달라져. 공부하는 자세가 달라지고, 문법도 마찬가지예요. 외국사람들한테 은는이가 계속 설명해봐요. 못하거든요. 문법에 다 있어요 기본적으로. 이걸 알아야지 설명할 수 있거든요. 이 사람들은 이걸 외울 수 밖에 없거든요. 우리가 왜 영어 To부정사 외우잖아요. 그러니까 그들도 외국어를 배우기 때문에 일정부분 외울 수 밖에 없어요. 그럼 뭘 외워야 될까요? 몰라요. 전공하지 않으면. 설명을 해보니까 야, 이게 이래서 필요한 거구나. 내가 이것만 좀 더 배웠다면, 이 사람들을 이렇게 좀 더 아,, 할 수 있었을 텐데...,안타깝다. 했었죠. 마찬가지예요. ODA 같은 경우도, 뭐 할 말 무수히 많죠. 효과성 높여야 되고, 오너십 중요하고, 말은 유수같이 다 말할 수 있죠. 하지만 관점이 중요한 거예요. 물론 관점을 가지고, 정말 그래서 니 말이 많냐. 증명할 수는 없어요. 누구도 그걸 증명할 순 없어요. 말빨 누가 다 먹히냐. 현장은 이렇다. ODA 자체가 현장을 위한 건데, 현장에 이런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이거 해야된다. 이거 얘기하는 거하고, 아, 이런 전공하고 학위따고 이렇게 해야되요. 개뿔 우리한테 안 맞어. 마찬가지로 그런 의미에서 현장에 대한 중요성, 그리고 현장......에 대한 경험에 대한 가치. 거기에 따라서 내 입지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뭔가, 정말 국제개발 협력이든 뭐 국제활동이든. 뭔가 좀 더 자신의 주관 자체가 좀 더 그.....들에 대한 약자에 대한 배려와 그 다음에 현장사람들에 대한 위로가 좀더 포함되어 있다면, 그들의 삶을 모르면 그걸 알 수가 없거든요. 그리고 거기에 대한 진정성도 없고 사실 하다보면 좋은 직업이기 때문에 하는 사람들 얼마나 많아요. 주변에 그런 사람들 많잖아요. OO이 중요한 게 아니라 뭐, 코이카에 들어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EDCF 들어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어떤 가치를 두고 살 것인지...가 좀 더 중요하지 않을까. 그거 가져야지 행복해지지 않을까.....
자, 행복해지자. 와~~그러면서 좋잖아요. 사는 게 아니잖아요. 저는 그렇게 얘기해요. 그래서 행복해집시다. 행복해지려면 이런 건 필요하지 않을까. 저는 이렇게 살아보니까 이렇더라구요. 제가...다른 봉사단 해봤는데요. 해봤는데요. 근데, 결국은 행복이더라구요. 이렇게 하니까 더 행복해지던데요. 여러분도 행복해지세요. 결국 이렇게 결론을 맺게 되더라구요. 저는 이런 생각 갖고 있어요. 그래서 나를 만나는 사람들은 좀 더 행복해졌으면 하는 생각을 갖고 있고, 그래서 그들이 추구하는 행복에 좀 더 가까워 지기위해서 중요한게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실제로 해요. 그래서 초등학생한테도 필요하고, 대학생들한테도 필요하고 대학생들의 고민이 중요한거죠. 그 사람들한테 맞춰서 얘기해주죠. 대학생들은 경력개발 역량개발 중요하다고 맞춰서 얘기해주고, 일반학생들은 그런 거 잘 안들어오니까 대학생활과 해외봉사단 연결되냐. 안되지. 그러니까 역량개발 해야지. 뭐 이러면서 왜 어떻게 공부해야되고 또 공부가 어떤 의미가 있고, 경험했던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거 밖에 없잖아요. 내가 해봤더니 이렇다 뭐 이런 얘기를 하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