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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정기술 이야기

[ODA Watch작성원고]적정기술, 우리의 발전대안인가?

이 글은 ODA Watch Newsletter 35호에 실린 글로, ODA Watch Policy Review Team과 함께 공동 작업해서 작성한 것입니다.

적정기술, 우리의 발전대안인가?

기후변화로 인한 환경파괴가 가속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국제개발협력의 화두가 되고 있는 것은 지속가능성과 원조효과성이다. 지속가능한 삶과 분리된 개발은 효과성의 측면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이번 기사에서는 지난 호에 이어서 이러한 문제의 대안으로 등장하고 있는 적정기술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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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정기술을 도입한 사례: The Hippo Water Roller

적정기술이란 무엇인가?

적정기술(appropriate technology)이란, 3세계의 지역적 조건에 맞는 기술이다. , 해당지역에서 산출된 원재료로 그 지역에서 소비되는 제품을 만들어, 지역 환경에 적합한 기술을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이 용어는 경제학자인 슈마허가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 제시한 것이다. 그는 빈국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다른 종류의 기술 즉, 인간의 얼굴을 한 기술을 강조한다. 과거에 원시적인 기술에 비하면 훨씬 우수하지만, 부자들의 거대 기술에 비하면 훨씬 소박하며 제약이 적다는 의미에서 중간기술(intermediate technology)이라고도 한다. 다시 말하면, 거대한 자본투자가 필요하지 않으며 누구나 쉽게 접근하고 사용할 수 있는 기술, 전문가와 권력집단에 의해 전유되고 통제되는 것이 아니라 자조적이고 민주적인 기술, 생태계의 법칙과 공존하며, 희소자원을 낭비하지 않고, “인간의 손과 머리를 필요로하는 기술을 적정기술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적정기술을 개발협력사업에 적용함으로써 효과성을 얻을 수 있을까? 개발과 관련된 각 영역과 어떤 연관성을 가질 수 있을까?

 

적정기술은 프로그램 접근방식(PBA)에 더 적합하다.

한국을 비롯해서 1990년대까지 대다수 원조 공여국들은 1992 EU가 이른바 Logical Framework Approach에 입각해서 개발된 PCM(Project Cycle Management)에 의존되어 원조사업을 진행해 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원조의 효율적 제고를 위해서 PCM방식보다는 시행기법의 프로그램접근방식(Program Based Approaches)으로 가야 한다는 국제적 합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앞의 OWL 34호에서 살펴보았던울란바타르시 대기오염저감을 위한 난방문화개선 시범사업을 살펴보면 일반적인 프로젝트 사업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많은 문제점이 드러난다. 우선 사업의 지속성이 의심될 뿐만 아니라 현지 주인의식(Local Ownership)의 발휘가 제한되며, 때문에 현지인들의 역량강화에 있어서도 그 효과가 매우 미비하다. 또한 사업의 신축적 활용에 대한 적절한 배려 없이 미시적 관리에만 치중되는 측면이 강한데 이러한 문제점은 적정기술의 활용으로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만약 한국국제협력단이 울란바타르시에 연탄난로와 연탄을 보급하는 것 대신에 태양광 발전기나 자전거 발전기 혹은 태양열 조리기 등을 보급했다면 어땠을까? 이러한 기술은 보다 지속 가능할 뿐만 아니라 기본적으로 현지인들의 기술개발을 통해서 진행되기 때문에 역량 개발에 있어서도 보다 효율적이다. 이러한 기술은 생활에 기본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에 정책적 우선 순위에 있을 뿐만 아니라 기술전수가 용이해 사실은 많은 연관 활동이 가능하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적정기술은 환경적으로 건전하고 지속 가능한 발전에 더 적합하다.

지속 가능한 발전이란 말은 원래환경적으로 건전하고 지속 가능한 발전(ESSD; environmentally sound and sustainable development)’ 에서 나왔다. 따라서 환경적/생태적 지속가능성은 지속 가능한 발전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적정기술은 현재 실내공기오염과 이로 인한 보건문제, 난방용 연료의 대체를 통한 대기오염 문제, 깨끗한 물을 공급하는 일에서 태양열을 이용한 관개농업까지 많은 영역으로 확대가 가능하다. 이는 인간적·환경적 재해를 방지한다. 그리고 기술을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사람들의 경험을 통해 직접적으로 다른 삶의 방식을 실현할 수 있도록 한다.

거대한 핵발전소와 기존의 전력공급망을 기반으로 하는 중앙집중식 전력시스템은 환경에 부담을 준다. 그러므로 빈곤층의 접근성이 떨어지는 에너지 공급을 반복하는 것의 생태적 비용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산업적 수요를 위한 에너지 공급과 주거용 수요를 구분한다면, 적정기술의 파급효과는 분명 당장의 실현가능성과 지속가능성의 측면에서 거대 기술보다 크다고 볼 수 있다.



아이들이 놀면서 물이 나오게 하는 플레이 펌프(Play Pump). 위 사진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설치된 것이다.


적정기술은 여성들의 리더십과 잠재력 일깨우데에 더 적합하다.

가사를 전적으로 담당하는 개도국 여성들은 또 다른 형태의 성 차별을 받는다. 여성과 아이들의 생활에 필요한 연료를 수집할 때 드는 시간과 노력은 그들이 일상생활에서 가용할 수 있는 시간과 노력의 범위를 좁힌다. 또한 생명상의 위협도 받는다. 개도국의 여성들은 조리를 하는데 쓰일 땔감을 찾아 하루에 여섯 시간이 넘도록 수 킬로미터를 걷는다. 나무를 구할 수 있는 곳이 점점 멀어지면서 강간의 위협이나 동물의 공격에 시달린다. 고생 끝에 땔감을 구해도 문제는 여전하다. 집안에서 나무나 동물의 분뇨를 태우면서 발생하는 연기가 가사를 담당하는 여성의 목숨을 위협한다.

인도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이 담당하는 가사일에 적정기술을 도입했다. 음식을 조리하는 데 필요한 땔감을 구하는 대신 태양열 조리기를 이용하는 것이다. 태양열 조리기를 사용하면 멀리까지 땔감을 찾느라 수고를 들일 필요도 없고, 여성들의 건강상의 위협도 막을 수 있다. 또한 성 역할 분담에서 오는 차별을 막을 수 있고, 여성들의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적정기술의 도입으로 인하여 지역 공동체의 여성들에게 공동체를 변화시킬 수 있는 리더십과 잠재력을 일깨울 수 있다.

 

적정기술은 질병발생률 낮추는 데에 적합하다.

고체 연료를 태우는 데서 생기는 실내 공기 오염은 매해 16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다. 이는 말라리아로 인한 사망자 수를 넘어선다. 매 분마다 실내 공기 오염으로 3명이 이상이 죽는 셈이다. , 이것은 어린이와 여성들의 직접적인 사망 원인이 된다. 통풍이 잘 되지 않는 실내에서 나무를 땔감으로 사용해 조리를 하면 일산화탄소, 포름알데히드, 벤젠, 이산화질소 등의 가스가 발생하는데, 이런 물질은 급성 하부 호흡기 감염, 만성 폐쇄성 폐질환, 폐결핵 등을 일으킨다. 폐암이나, 천식, 백내장, 저체중 출산으로 인한 사망을 유발한다는 연구도 있다. 연기에 노출된 여성들은 만성 폐쇄성 폐질환을 앓을 가능성이 2배에서 4배정도 커진다.

이러한 점에서 태양열 조리기는 화석 연료나 땔감을 사용하지 않고 연료를 대체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하고 안전하며 편리한 방법이다. 태양열 조리기는 땔감처럼 폐 질환을 유발하는 유해 가스를 내뿜지 않으며, 태양열 조리기로 물을 끓여 마시면 오염된 물에서 올 수 있는 질병의 발생을 낮출 수 있다. 특히 개도국 사람들에게 건강한 삶을 지지하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다.

 

 

볼프강 쉐플러가 발명한 쉘플러 태양열조리기(Scheffler Reflector)

인도에서는 이 조리기를 이용해서 1,000명 이상이 먹을 수 있는 요리를 조리한다.

 

 

적정기술은 아이들에게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저개발국의 주민들은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 우선적인 목표이다. 따라서 아이들이 물긷기, 연료수집, 농사일 등에 투입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아이들의 교육에 대한 기회를 박탈하는 것과도 그 의미를 같이 한다. 가사와 노동을 아이들이 맡게 되면서 학교에 가서 정규교육을 받을 수 있는 시간이 사라지고 이것은 장기적으로 지역 공동체의 성장을 저해한다.

하지만 적정기술을 적용한다면 아이들이 가사노동에 소비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그리고 가족 내의 아이들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수 있다. 따라서 아이들은 학교에 가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이다. 적정기술을 적용하여 아이들에 대한 가사노동의 부담을 줄인 예로는 MIT 학생들이 만든 자전거 세탁기가 있다. 자전거 세탁기는 자전거 차체와 드럼통을 결합한 세탁기인데, 저개발 국가 여성이나 아이들이 빨래하는 데 들이는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만들어졌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산간벽지 마을의 특성을 감안해 자전거를 동력원으로 썼는데, 자전거에 달린 기어를 이용하면 변속이 가능해 세탁물의 양이 많더라도 힘을 덜 들이고 쉽게 빨래를 할 수 있다.



MIT 공대 학생인 라두타는 이 드럼통 세탁기로 2005 MIT IDEAS 경연대회에서 1등을 했다.

이 드럼통 세탁기는 '바이슬아바도라 (bicilavadora·스페인어로 자전거와 세탁기의 합성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적정기술은 농사일의 효율성 증대를 가져온다.

개도국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농사를 지어 생계를 이어나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새로운 기술의 도입이 없는 한 농사의 효율성은 떨어진다. 그리고 떨어진 효율성은 지역의 발전을 저해한다. 그렇다고 해서 마구잡이 식의 무분별한 신기술의 도입은 지역공동체를 무너뜨릴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저개발국에 공급되어야 하는 기술은 환경을 파괴하지 않으면서도 기술의 발달을 꾀할 수 있는 기술, 즉 지속 가능한 기술이어야 한다.

적정기술을 농촌개발에 도입한 예로는, 아프리카를 여행하다 열악한 생활환경에 충격을 받은 미국인 엔지니어 마틴 피셔가 개발한 수동 펌프가 있다. 머니 메이커라고 불리는 이 수동펌프는 전기나 연료를 사용하지 않고 발로 레버를 밟아서 작동한다. 반경 200m 내에 강이나 연못·우물이 있으면 이 펌프를 이용해 쉽게 농업용수를 끌어올 수 있다. 이로 인해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편리하게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농사의 효율성 증대는 그 지역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다.

 

우리의 개발대안 왜? “신봤다!” 소리가 안나오나?

앞서 설명된 것처럼 적정기술의 도입은 국제개발협력분야에 있어서 새로운 전환점을 가져올 만큼 혁신적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중요한 사업이 왜? 보급되지 않고 있을까? 우선은 무지이다. 자신을 생각해보자! 이 글을 읽기 전에 나 혹은 내 주변 사람들은 적정기술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었나? 우리나라 최고의 지성으로 뽑히는 '지식in'(인터넷 포털 기업의 서비스)도 적정기술을 모른다! 그렇다면 너무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라는 것은 자명하다. 상황이 이러하니, 관련 사업을 추진하는 담당자들도 관련 내용을 알리가 없다. 적정기술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기관에서 우리나라 무상 원조기관에 협조요청을 했었는데, 전혀 진행이 안되더라는 사연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먼저는 관련 내용을 알고 알리는 과정이 필요하리라고 본다.

 

적적기술이 보급되지 못하고 있는 다른 이유는 연대활동의 부족이다. 현재 적정기술은 개발단체보다는 환경단체 측에서 보다 활발한 논의가 진행 중에 있다. 적정기술의 도입이 필요한 제3세계로 관련 기술이 전달되기 위해서는 보다 적극적인 환경단체와 개발단체 간의 연대가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적정기술을 이용한 연대 활동의 사례는 전무하다. 서둘러 논의의 공론화를 이루어가면서 정말 제3세계가 필요로하는 우리의 개발 대안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저성장 시대를 살고 있는 한국의 청년들에게도 적정기술의 도입은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다. 아직 이 분야를 선점하고 있는 국내 전문가는 극소수이다. 21c밴처 정신을 통해서 창업의 열풍이 불고 있는 한반도에도 제3세계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나가는 세계 개척자들이 많아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