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 출범과 함께 한국의 국제개발협력(ODA) 정책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6조 8,000억 원이라는 역대 최대 규모의 ODA 예산 편성은 단순한 양적 확대를 넘어, 보다 전략적이고 통합적인 원조 체계로의 전환 의지를 보여준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하재웅 필집자의 관점에서 이재명 정부의 ODA 통합 전략과 그 전망을 분석해보고자 한다.
흩어진 힘, 그 한계가 드러나다
한국의 현재 ODA 체제는 마치 두 마리 토끼를 쫓는 격이다. 외교부 산하 KOICA가 무상원조를, 기획재정부 산하 한국수출입은행 EDCF가 유상원조를 담당하는 이원화 구조는 지난 수십 년간 한국 ODA의 기본 틀이었다. 하지만 ODA 규모가 28억 달러(2022년 기준)로 성장하면서 이 분리 체제의 한계가 점차 선명해지고 있다.
수원국 현장에서는 이러한 분리가 더욱 두드러진다. 베트남의 한 정부 관계자는 "같은 한국의 지원인데 왜 두 개의 다른 창구로 와서 각각 다른 절차를 요구하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한 바 있다. 사업 기획 단계부터 실행까지 조정 비용이 과도하게 발생하고, 때로는 유사한 분야에서 중복 투자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OECD DAC의 2018년 동료검토에서도 이러한 문제점이 지적되었다. 한국의 원조 효율성이 다른 공여국 대비 상대적으로 낮다는 평가의 배경에는 바로 이런 구조적 한계가 자리잡고 있다.
통합 기구의 꿈, 이제 현실이 되나
이재명 정부의 등장과 함께 ODA 통합 기구 설립에 대한 기대감이 다시 부상하고 있다. 물론 아직 구체적인 공식 발표는 없지만, 실용주의를 표방하는 이재명 정부의 정책 기조를 고려할 때 점진적 통합 접근이 유력해 보인다. 필자의 예측으로는 2025-2030년에 걸친 3단계 통합 시나리오가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1단계(2025-2026년)에서는 기존 조정 체계를 강화하고 부처 간 협력을 확대하는 데 집중할 것이다. 2단계(2027-2028년)에서는 중장기 통합 방안을 수립하고 관련 법제도를 정비할 예정이다. 마지막 3단계(2029-2030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단일 통합기구 출범을 본격 검토하는 단계에 들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신중한 접근법은 영국의 성급한 DFID 통합 사례에서 교훈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 2020년 DFID와 외무성을 급작스럽게 통합한 영국은 오히려 전문성 손실과 투명성 저하라는 역효과를 경험했다.
세계는 이미 통합의 길을 걷고 있다
한국이 통합을 고민하는 사이, 세계 주요 공여국들은 이미 통합 모델의 성과를 입증하고 있다. 일본 JICA는 2008년 완전 통합을 통해 세계 최대 양자간 개발협력 기관으로 자리매김했다. 기술협력, 엔차관, 무상원조를 단일 기관에서 운영하며 '원스톱 서비스'를 구현한 결과, 프로젝트 효율성이 크게 향상되었다.
독일의 경우 2011년 GIZ 출범으로 기술협력 분야의 통합을 완성했다. 비록 금융협력 기관인 KfW와는 별도로 운영되지만, 명확한 역할 분담을 통해 각자의 전문성을 유지하면서도 시너지를 창출하는 모델을 보여주고 있다.
프랑스는 2022년 Expertise France를 AFD 그룹에 편입시키며 단계적 통합의 성공 사례를 만들어냈다. 이들의 공통점은 성급한 통합보다는 각 기관의 전문성을 존중하면서 점진적으로 시너지를 확대해나간다는 점이다.
한류와 만난 ODA, 새로운 차원의 소프트파워
이재명 정부 ODA 정책의 또 다른 주목점은 한류 외교와의 연계 전략이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K-pop, K-drama의 영향력이 입증된 상황에서, 이를 개발협력과 접목시킨다면 한국만의 독특한 ODA 모델이 탄생할 수 있다.
베트남에서 진행 중인 지속가능한 농업변화 프로젝트는 이미 18.2만 헥타르에서 농민 소득을 30% 증가시키는 성과를 거두었다. 여기에 K-culture 요소를 접목한다면 어떨까? 드라마 제작 기술 전수, K-pop 아카데미 운영, 한국어 교육 확대 등을 통해 문화적 친밀감을 바탕으로 한 개발협력이 가능할 것이다. 이는 단순한 원조를 넘어 브랜드 코리아 구축에도 기여할 수 있다. 수원국 국민들이 한국 문화를 통해 한국을 먼저 알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의 개발 경험과 기술을 더욱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다.
프로그램 접근법, 수원국 중심 사고의 전환
이재명 정부는 국가별 프로그램 접근 방식(Program-based Approach) 도입에도 적극적일 것으로 예상된다. 기존의 분야별 접근에서 수원국의 개발정책과 빈곤감소전략에 연계된 지원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는 수원국의 주인의식(Ownership) 강화라는 국제 개발협력의 핵심 원칙과도 부합한다. 한국이 수원국에서 공여국으로 전환한 유일한 사례라는 점을 고려할 때, 수원국의 입장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강점을 활용한 접근법이라 할 수 있다.
기대와 우려, 그 경계에서
물론 모든 변화에는 기대와 우려가 공존한다. 통합 과정에서 각 기관의 고유한 전문성과 조직문화가 희석될 위험도 있고, 거대 조직의 관료주의가 오히려 효율성을 저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필자가 바라보는 이재명 정부의 ODA 통합 전략은 이러한 우려를 충분히 고려한 신중하고 전략적인 접근으로 보인다. 6조 8,000억 원이라는 역대 최대 예산이 단순한 규모 확대가 아니라 질적 혁신을 위한 마중물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2030년까지 ODA/GNI 비율을 0.3%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는 한국이 진정한 개발협력 선진국으로 도약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현재 0.17%에서 거의 두 배에 가까운 확대인 만큼, 이를 뒷받침할 체계적인 제도 개선이 필수적이다.
변화의 물결, 이제 시작이다
한국의 ODA가 흩어진 힘을 모아 하나의 전략적 도구로 거듭나는 과정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이재명 정부의 5년은 한국 개발협력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 다음 편에서는 구체적인 통합 시나리오와 각 단계별 추진 과제, 그리고 성공을 위한 핵심 요인들을 더욱 자세히 살펴볼 예정이다. 한국의 ODA가 양적 성장을 넘어 질적 혁신으로 이어지는 여정, 그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계속된다.
본 글은 하재웅 필집자의 개인적 분석과 예측에 기반한 것으로, 공식적인 정부 정책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정책 변화를 추적하고 업데이트할 예정입니다.